12. 모용택단 “문공에게 문제가 있다.” 나는 월국 전 어의의 약방문에서 새롭게 알게 된 약재 목록을 빈 종이에 옮겨 적다가 뚝 손을 멈추고 말았다. 청서가 또 개소리를 할 것 같았다. 북주군의 정기 보고를 개봉할 때는 진지하더니, 열어보니 별 내용이 없나 보다. 평정한 여러 나라가 평화로우니 황제란 자는 잡념이 많다! “양물이 안 서는 거? 전에도 말했...
10. 문충현 여름의 초입, 폭풍이 불기 전 달콤한 해풍이 살랑이는 계절. 진인화가 한 알 한 알 씻어다, 또 그것도 알이 크다고 반 갈라 안의 씨까지 빼 준 청포도를 천천히 갉아먹으며 푹신한 보료에 기대 앉았던 나는,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생활이라던 걸 깨달았다. 작성해야 장계도 없고, 아랫것들의 이말 저말을 듣고 조정해야 할 것도 없고, 높은...
9. 황보기정 “자, 이제 그만 붙잡고 있고 문연각 태학사좀 다시 만나게 해 줘. 아니면 그가 하던 일을 누구한테 물려라도 주게 하던가." “어떻게 충현을 파직하란 말이야. 그보다 못한 자들도 모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선 그릇이 크고 작고에 따라 다 각자의 직분이 있는 법이라 기정 네가 그리 말했잖나.” “그럼 어쩌라고! 나한테 보...
그냥 잘 생긴 장년의 사내가 좋은 거라면 차라리 태상시경 서홍상이 훨씬 반듯한 미남이다. 문공보다 세 해 늦게 급제했지만, 같은 현학을 나왔고 나이도 같다. 모양 좋은 수염은 광택이 차분하고 눈썹과 머리는 여전히 동백 씨앗처럼 검고 피부는 옥같이 희고 이가 깨끗하며 눈이 맑다. 어깨는 반듯하니 넓고 키도 늘씬하니 크다. 항상 옷차림이 은은하게 고급스럽고 우...
7. 진인화 “근데 문공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내가 묻자 나의 의부 진태감은 접던 침구를 내려놓고 가슴이 내려앉는듯한 한숨을 쉬었다. 일껏 밀랍 면약을 아침저녁 발라놔도 전처럼 반질거리지 않고 푸석한 뺨이 푹 꺼졌다. 지난 세 달 동안 석명전에서 일어난 일이 아버지를 이전보다 다섯 살은 늙어 보이게 했다. 느느니 느는 게 한숨이었다. “인화야 네가 ...
5. 문충현 어떡하냐. 아이고. 청서 운다. 사람의 체온은 누구나 그리 큰 차이가 없건만 청서의 눈물은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무엇이 그의 피와 눈물을 이토록 맹렬히 데워 놓는가. 젊음이란 이리도 어려운 것이다. 근데 우니까 미간이 열세 살 때랑 똑같네. 정복군주가 안 되었더라도, 청서는 이 미모로 여러 나라를 흔들리게 했을 아름다움을 가졌다. 빛 아래선 ...
3. 문충현 이거를 꿀이라고 해야 하나? 최종적으로 삶은 꿀의 맛? 사흘 전 눈을 떴을 땐 입 안이 쓰고 온몸이 다 아파서 체면도 잊고 눈물이 줄줄 샜다. 살면서 하도 위통과 두통에 시달렸더니, 오랜 버릇대로 어금니를 꽉 깨문다는 게 경황이 없어 혀를 물고 말았다. 실수였다. 그 때문에 대경실색을 한 청서가 날뛰고 여기 모용씨는 안 그래도 검던 눈 밑이 더...
기능하는 환상들 1. 문충현 인생을 살다보면 불가능한 바람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지천명에 다다른 내가 아름답고 난폭한 젊은 애에게 붙들려 침상에 밀어붙여진 채 일월이 교차하는 걸 보는 때가 오리라 어찌 생각했을까. 다만 그러한 행동을 지탱할 능력이 내 육신에는 없었다. 애석한 일이었다. 화첩으로 볼 때는 이리로도 좆을 물고 저리로도 좆을 삼키고 시켜만 주면...
가물가물한 선잠에서 문을 끌어낸 것은 아이들의 빽빽거림이었다. 사라진 것들 대신 살아있는 것들이 존재를 과시한다. 부산스런 움직임에 먼지가 날려 오후의 햇빛 아래 흔들렸다. “아니, 그렇게 쑹린松林의 쑹sōng이랑 틀리단 말야!” “똑같이 생겼는데 뭐가 다르다고!” “송song은 노래라구, 노래.” “내 듣기엔 다 비슷하거든!”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기지개...
6. 그들이 처음만난 것은 여름이었다. 모든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는 여름 밤, 요정들과 악귀들은 그리 구분이 가지 않는 모습으로 갖가지 가루를 지상에 뿌려댄다. 상하이의 스모그와 뒤얽힌 더위는 종종 폭력성과 광기의 적절한 변명이 되어주곤 한다.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뒷골목은 숨쉬기 어려울 만큼 덥고 어두웠다. 차오싱런 주석이 집권했던 지난 ...
야오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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